2개월 동안의 전기 현장 업무가 예기치 않게 끝이 났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아마도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최근에 인천 전기차 화재 사건이나 전기차 충전기 점검 중 발생한 사망 사고 등 전기 관련 사고들이 잦아지면서 전기차 충전기 설치 업무가 완전히 멈춰버렸다. 처음엔 1주일 정도 걸릴 줄 알았지만, 2주, 그리고 4주가 흘렀다.
성인이 된 이후 이렇게 길게 쉬어본 적이 없어서 불안감이 커졌다. 나는 가장이자, 전세 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주거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더욱 흔들었다. 결국 나를 믿고 써주신 팀장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더 이상 이렇게 놀 수 없었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전기일을 시작했을 때, 팀장님은 일이 많든 적든 월 300만 원을 맞춰주겠다고 하셨다. 하루 일당은 17만 원이었기에, 20일만 일해도 340만 원이 되니 300만 원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팀장님이 나를 배려해주신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예전에 일하던 곳 근처의 특장차 수리 업체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몇 달 사이에 일이 몇 번이나 바뀌다 보니 적응하는 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들었다. 이제는 이 기술을 깊이 익혀서 앞으로의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전기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 시험을 준비하던 중, 자동차 차체 수리 기능사라는 자격증이 현업과 더 밀접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마음은 조급하고, 조금이라도 더 벌어볼 생각에 집수리 프리랜서로 밤에 일해볼까 고민도 했다.
공구를 다루고, 현장에서의 감각을 키워가며, 지금 하는 일과 연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속도가 나질 않았다. 기술이 아직 부족한 상태에서 남의 집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게 옳은지 계속 고민했다. 수전 교체나 변기 교체 같은 일이 내가 하는 일에 정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도 남아 있었다.
일단 해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가급적이면 현업에서 쓰이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될 거 같다. 자동차 차체 수리 기능사를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로 주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도 고민해봐야겠다.
심지어 총을 쏘다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염려하는 등의 행동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지적해요.
(책에서 나온 예시는 아닙니다만)
사실 어떻게 보면 집에 가만히 앉아서 영상을 찾아보고,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해보는 행위는
사격장에 가서 총을 직접 쏘는 것과 비교했을 때는 매우 편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찌 보면 어떤 것을 잘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인 거죠.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을 하기 위해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거 같아요.
저는 예전에 게임 개발을 했었어요. 단순한 흥미와 호기심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마음속 깊은 곳에는 '게임 개발로 성공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유튜브에서 골드메탈님 영상을 보며, 따라 만들면서 매일매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게임을 만들어 배포를 하고, 피드백도 받으면서 게임을 만들어봐야 되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부족함이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문법을 공부하고
최신 기술을 학습하는 등 목적 달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만 하고 있더라고요.
게임개발로 돈을 벌고 싶으면서
영상 보면서 따라 만드는 게 쉽고 재밌으니까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았던 거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뭔가를 해나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내가 왜 그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을 깨닫는 것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불편한 상황 속에
나를 던져 넣는 과감함도 가져야 된다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첫날부터 말하기를 한다는 아이디어는 학습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코딩도 첫날부터 만들 수 있고, 가르치기도 첫날부터 할 수 있고, 코치도 첫날부터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기량을 연습하기에 앞서 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기량을 연습하면 점점 편안해진다.
기분은 날씨 같은 것이라고.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게 힘이 펄펄 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몸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몸이 힘들면 마음이 가라앉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날씨 같은 거라고 여기면 되는 거예요. 바람 불다, 비가 오다 그러다 햇살이 비추기도 하는 거거든요. 또 그러다 흐리기도 하고.
책 도입부를 읽으면서 김창완 님 특유의 말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거 같았다. 말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할까? 담백하다는 표현이 맞는 건가. 어쨌든. 뭘 보고 자라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많이 써봐야겠지 뭐.
열심히 괴로워 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책
학창 시절을 너무 허투루 보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20대 후반부터는 꽤 열심히 살았던 거 같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미국 월스트리트 어딘가 사는지 마는지 하는 사람들의 조언에, 시간을 빼곡하게 채워서 살았다.
미라클 모닝, 아침 명상, 아침 운동, 출근길 스픽으로 영어회화 공부, 점심시간에는 프로그래밍 공부, 집에 와서는 독서, 아이들 재우고 게임 개발... 딱히 싫지는 않았던 거 같다. 스스로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있었고, 뭔가 성장하고 있다는 즐거움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강박이었다. 빼곡한 투두리스트 중 뭐 하나라도 빠트려놓은 날은 시작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게 계획대로 될 수 없는 건데, 내 계획이 틀어지면 그것이 짜증 났다. 당연히 겉으로 드러났고,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사람들을 괴롭혔겠지. 아내나 아이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꽤 힘들게 했던 거 같다.
다행히도 이런 강박적인 태도가 문제라는 것은 빨리 알아차렸다. 그래서 최근 몇 개월 동안은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에 여유를 갖자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보내왔던 거 같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찌그러져도 동그라미라는 책은 꼭 나를 위로해 주는 거 같았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마곡 다음 현장은 화곡이다. 나는 전기 조공으로써 전기차 충전기 설치 보조를 다니고 있다. 다른 현장은 모르겠으나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가 않다.
선임기공 공구 챙겨드리고, 사다리 옮기고, 케이블 당기고 힘쓰는 일 정도 하면 된다. 나는 조금 더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날 업무일지를 쓰면서 회고하고 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이라 식겁한다. 지하 작업 도중 물이라도 넘치면 어쩌나... 겁쟁이 일꾼은 이렇게 마음 졸이며 일을 다닌다.
오늘 포설할 케이블들이다. 케이블을 전기실 등에서 끌어다 쓰기 위해 케이블을 천장 또는 지중에 까는 작업을 포설이라고 한다. 현재 대부분 아파트, 오피스텔에 작업을 들어가서 업무 프로세스는 비슷한 편.
그러나 신축인지, 구축인지에 따라 다르고, 건물 마다 환경이 제각각이라 작업 난이도가 매번 다르다.
수 십 미터 되는 거리의 케이블을 두 사람이 손으로 잡아당겨야 하는데, 고되다... 모터로 감아서 당기는 기계도 있다고 하던데 사줬으면 좋겠다.
점심은 케이블을 다 풀어놓은 드럼통을 눕혀놓고, 중식을 시켜 먹었다. 이런 것도 노가다의 낭만이라면 낭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렸을 때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무조건 편한 일! 고생 안 하면서 큰돈 버는 일! 만 찾아 헤맸었는데, 요즘 들어 현장 기술이 나와 꽤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즉각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잘하기도 하고. 그래서 게임 개발 공부를 꽤 열심히 했었고, 재미있게 했었다.
ㅇ오전 작업을 마무리 하니 소나기도 그쳤다. 아직 작업이 좀 남긴 했지만, 뿌듯하다! 내가 가진 기술로(정확히는 아직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일은 즐거운 거 같다. 노가다하면서 무슨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다.
지금 당장 내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거 같고, 남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맞춰져있는 기준을 나에게로 옮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자주 글로 정리해 보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언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기 일을 열심히 배워서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활용해 창업을 하고 싶다. 이케아에 가면 잘꾸며진 쇼룸을 보면 나도 저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래서 전기기술을 활용해 공간과 관련된 사업을 해보고 싶다. 어떻게 연결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보자.